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3261 참조.
'사회운동, 노무현의 그림자에 안녕을'이라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저 필자(박준형)나 저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같은 좌파라고 해서 내가 그를 지지하고 신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포퓰리즘'은 <조선일보>나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할 때 휘두른 단골 칼날이었는데, 좌파 운동가의 이 칼럼에서도 그것이 등장한다. 두 '포퓰리즘'은 다른 관점에서 꺼내어진 것인가?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조선일보는 노무현을 좌파 포퓰리스트로 몰았고, 반면 박준형씨는 그를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즉 우파 포퓰리스트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둘 다 노무현 정권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허둥지둥 '포퓰리즘'을 꺼내들고 있다.
포퓰리즘에 대해서 그 말을 듣고 쓰는 사람들은 분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념정리는 또렷하지 못하다. 단적으로 서병훈의 <포퓰리즘>이라는 책은 그점을 (서술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증명한다. 이 책은 다른 '이념 서적'에 비해 읽기 쉬우나, 그렇다고 포퓰리즘을 엄밀하게 정의하고 있지는 못하다. 포퓰리즘은 그 기준이 너무나 단순한 데다가 인상비평에 의거한 딱지붙이기에 동원된다. "나를 무시하고 딴놈들 인기에나 영합하는 놈".
포퓰리즘은 기준은 대체로 이렇다. 첫째, 실제로 그것은 우선 인민 다수의 인기에 영합한다. 둘째, 계급의 구획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다르다. 매우 애국주의적이다. 셋째, 모두를 다 포용하는 게 아니라 소수자를 공격함으로써 강렬해진다. 다시 말해 파시즘과 통하는 요소가 있다. 한편, 소수자가 누군지에 따라서 포퓰리즘에도 좌익과 우익이 나뉘기도 한다. 좌익 포퓰리스트들은 우익 포퓰리스트와 다르게 질적 다수파였지만 양적 소수파인 특권층을 공격한다. 우익 포퓰리스트는 노동조합을 노동귀족이라고 부르며 특권층으로 띄워놓고 쏘아 버린다. 또 좌우를 떠나, 타민족, 외국인이나 이교도는 포퓰리즘의 과녁이 되기 십상이다.
노무현은 '인민 다수의 인기에 영합한다'는 조건에서부터 포퓰리스트에서 이미 이탈하고 말았다. 그는 집권기간 대부분을 50%를 밑도는 지지율로 보냈다. 정책은 인기영합적이었으나 무능했기 때문에 막상 지지를 얻지 못했다? 아니다. 우리는 노무현이 조용히 있을 때 지지율이 다소 반등하다가 그가 입만 열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추세를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가 추진하는 정책의 상당수는 정치권의 주류 견해는 물론 대중 정서를 거슬렀다. 일례로 노무현은 캐나다의 멀루니 전 총리를 입에 올림으로써 한차례 파장을 만든 적이 있었다. 멀루니가 증세를 꾀함으로써 집권여당은 침몰했으나 장기적으로는 그의 선택이 맞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돋보이는 건 인기영합이 아니라 역사의식이나 시대정신이다. 그것도 과도한 수준의. 이것은 제도적으로도, 재평가 받을 일 없는 '단임 대통령'이라는 조건과 어우러지면서 더 확연히 드러났다.
집권 원년 그의 재신임 발언으로부터 대중독재의 냄새를 맡은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의 재신임 발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포퓰리즘이나 파시즘과는 별 친연성이 없다고 확신한다. 차라리 '피해망상'이라고 하거나, "여론이나 역사를 지나치게 의식한다"거나 "이라크파병, 행정수도 이전, 4대개혁입법, 한미FTA 등에서는 정작 국민투표를 검토하지 않고 넘어갔다"라고 말한다면 모를까. 정치적 기반이 크고 단단하지 못한 상황에서 윤리적인 우위로 대통령직을 차지했는데, 측근 비리가 터지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결과일 뿐이다. 대통령이 되었지만 의회 등 여러 부문에서 소수파 신세를 면치 못할 때 국민투표제에 기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게 "반대의 정치", "원한의 정치", "대중 동원", "대중독재"라면 대통령직을 없애고 의회에서 총리를 선출해야 한다. 최초에 누가 대통령제하자고 그랬나, 그놈더러 "당신은 포퓰리스트"라고 말해라. '대연정' 역시 노무현이 포퓰리스트라는 단정에 어긋나는 대목이다. 막연한 반감을 부추겨 제1야당을 치는 대신, 그들에게 권력을 나눠주겠다고까지 공언한 포퓰리스트도 있나?
좌파로서는 노무현이 좌파다운 구석이 없는데 좌파 소리를 들으니까 기가 찰 법하다. 그러나 그 비결이 포퓰리즘에 있지는 않다. 저소득층, 저학력층이 한나라당에 경도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을 창출하고 지지한 계층은 중소득층, 고학력층이다(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지지층 역시 마찬가지다). 노무현이 서민이나 노동자를 홀려서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게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한미FTA, 삼성봐주기도 그렇다. 이것은 인기영합이 아니라 독단이었다.
노무현은 포퓰리스트가 아니고 엘리트주의자다. 물론 엘리트주의도 포퓰리즘만큼이나 규정짓기 어렵고,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은 아니다. 그렇다면 '반포퓰리즘적-엘리트주의자'라고 하면 더 명확해지겠다. 대통령후보 시절 노풍의 선두에 선 사람들은 전문가였다. 정치부 기자와 애널리스트들이 그를 맨 먼저 '대통령감'으로 꼽았다. 아무리 혁신적 성향을 품었을지라도 '원한의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럴싸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다. 노무현부터가 명문고를 나온 변호사였다. 참여정부에서 제일 두드러진 '참여'는 '(노무현과 비슷한) 엘리트들의 참여'였다. '위원회공화국'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명문대 학생운동가들도 386으로 통칭되며 의회에 대거 입성했다. 그러다가 다른 엘리트들, 관료나 재벌브레인에게 상당한 권력이 도로 넘어갔다. 이것은 정부를 두고 벌어진 엘리트들끼리의 역학관계 변화인데, 여기에 '포퓰'이 끼친 영향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그 엘리트들이 포퓰을 과연 얼마나 동원했던가?
노무현 정부는 자신의 인기없음을 역이용하기도 했다. 못된 점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국가 장래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관철시키는 스타일입니다." ('이백만의 '정책 아하 그렇군요!', 2005년 10월 31일) 참 비장하기도 하다. 지금도 노무현의 광적 지지자들이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공격받는 현상을 자신들이 '고독한 창조자'라는 근거인양 뽐내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인기 없다는 건 자랑이 아니거니와 '진정성'의 척도도 아니다. 노무현이 어떤 정책을 펴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했으나, 이보다 더 도드라진 건 지지자들까지 노무현을 떠나는 모습이었다. 적에게 공격당하고 친구와 이별해도, (다분히 자의적인)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에 충실하겠다는 발상은 가히 하이퍼 엘리트주의적이다.
진짜 포퓰리스트는 따로 있다. 근래 사회양극화를 들먹이지 않는 세력이 없다. 그런데 그들 중 어느 부류는 경제성장에서 해법을 찾으며 대중 다수가 아직도 개도국 시절의 성장률을 그리워하는 현실을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만두피 넣듯 '서민감세'에 슬쩍 '부자감세'를 밀어넣는다. 유류세는 깎고 종합부동산세는 폐지한다. 부자로서의 계급, 계층의식은 상당하지만, 다른 계급, 다른 계층 앞에서는 계급과 계층의 이해관계가 갈렸음을 부인한다. 떡밥은 당연히 애국주의다. 그렇지만 이 통합과 애국의 드라마에서 악역은 필요하다. 더구나 국제적 패권주의에 맞설 용기가 없으니 악역은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장애인이나 외국인을 속죄양으로 삼기엔 시대가 너무 변했던 터라, 좌빨과 노동조합을 찍어댄다.
포퓰리스트는 속죄양이 약자로 비쳐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속죄양이 부당하게 강한 위치를 누렸다고 법석을 부린다. 연봉 5천만원 받는 숙련 생산직 노동자는 노동귀족이 되고, 전문직 주류엘리트가 그보다 더 많이 벌고도 이리저리 세금을 덜 내거나 뺄 궁리를 하는 꼴은 못본체하며, 세금압박을 받는 다가구주택 소유자는 피해자가 된다. 자신들의 세월이었다는 기간의 1/5만 남에게 정권을 내줬을 뿐인데 그 새 세상이 온통 암흑천지가 됐다고 한다. 아예 만화에 나오는 '나쁜놈'처럼 "움움허허허 다 부셔버리겠다"라고 설치면 저자들을 응징해야겠다는 결심도 쉬워질 터인데, 약자는 자기네라고 떠드니 대중은 더욱 현혹되는 것이다. 반드시 포퓰리즘은 척결되어야 한다. 조선일보를 끊는 것도 그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재래시장을 떠도는 불량배들이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 보는 것마다 "나 이거 해봤어" "뻥튀기 사먹어라"라며 달려들어, 국화빵이며 떡볶이 장사며 구멍가게 일진이며 죄다 망가뜨리는 아해와 그 떨거지들 말이다.
추신: 포퓰리즘는 대개 인민주의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둘의 혼용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브나로드운동이 있었던 러시아나, 20세기 초반 미국에도 인민주의가 있었다. 이들 인민주의는 계급연합적이었으므로, 초계급적 인기영합주의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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